국산 ERP (더존) vs SAP

ERP는 예전부터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the Great Lockdown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WFH (재택근무)를 경험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게 되려면 ERP의 도입 여부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는 원격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ERP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일반인들도 ERP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많이 알고 있다. 그 덕에 국산 ERP의 대표주자, 더존비즈온의 주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더존, 글로벌에서는 SAP가 ERP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둘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더존이 과연 국내 ERP 시장에서 SAP를 꺾을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리서치를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SAP와 더존을 비교할 때 자동차 아날로지를 사용하곤 한다. SAP가 풀옵션 독일 SUV라면, 더존은 괜찮은 국산 세단 정도로 비교할 수 있다. 독일차에 더 많은 옵션(SAP의 많은 모듈, customizing 가능 여부)과, 더 짱짱한 견고함 (SAP의 시스템 안정성), 그리고 더 디테일한 마감 처리(SAP의 수많은 디테일한 기능들) 과 같은 부분에서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SAP가 모든 기업에게 정답이 될 수 없다. 더존 역시 모든 기업에 정답이 될 수 없다.

SAP와 더존 모두 기존의 영업그룹에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SAP는 중소기업 솔루션으로 ByDesign이나 B1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표를 얻으려 하고, 더존은 시스템을 보다 확대시켜 대기업으로 영역 확장을 시키는 중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직까지는 이 둘의 타깃층은 확연하게 다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SAP는 글로벌 대기업, 더존은 중소/중견기업으로 말이다.

“fully integrated” vs “integrated enough”

SAP와 더존의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각 소프트웨어의 레게 시에 있다. SAP의 경우, 제조업을 위한 MRP 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시작하여 다른 모듈로 뻗어나갔다 볼 수 있다. 반면, 더존 같은 경우 회계 모듈만을 지원했으나, 사용자가 많아지고 수요가 늘자 다른 모듈까지 만들면서 점점 더 커 가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제조업에 필요한 세세한 프로세스의 노하우를 더존이 쉽게 따라올 수 없다. 한 가지 더, SAP는 각 모듈별로 나뉘어있긴 하나, 각각의 모듈이 seamless 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재 마스터에 새로운 자재를 저장시켜 줬다면, 자재 구매를 할 때나 자재를 이동할 때 그 새로운 자재에 대한 정보가 자동으로 연동이 되어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더존과 같은 경우, 모듈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각의 모듈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 있다. 따라서, 자동 연동을 지원하지 않는 분야의 데이터를 바꿔주었다면 수동으로 동기화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실수로 까먹고 동기화를 하지 않는 경우, 데이터 무결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해외 브랜치를 가진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만약 국내 기업이고 해외지사까지 관리할 필요가 없는 회사라면, 굳이 SAP를 써야 할까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조금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는 회사들이 있는 회사라면, 본사는 당연히 지사의 물류, 영업, 회계 현황을 투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관리자(본사) 입장으로써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기엔 더존 ERP는 (후에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해외지사까지 컨트롤할 프로세스를 구현하는데 경험치가 부족하다.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 좋은 BEST PRACTICES가 나오는데, 해외 프로젝트 몇 번 해보지 않은 회사가 지난 50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로 만들어진 SAP의 BEST PRACTICES를 따라잡기엔 무리가 있다. (BEST PRACTICES가 뭔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반면 SAP는 수많은 해외 지사들이 있어도, 그 모든 현황들을 한 플랫폼 안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관리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해외지사가 너무 많아서, 각 지사의 규모도 커서 일일이 현황 보고받기가 힘든 회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SAP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중견 사이즈 기업들은 SAP를 꼭 써야 하는 이유는 없다. 오히려 좋은 점 보다 안 좋은 점이 더 많을 수 있다.

End-user가 쓰기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결국 돈

ERP 회사들이 자신의 상품을 프로모션 하기 위해 내놓는 여러 가지 설탕 발린 이야기들은 잠시 옆에 놔두고 보자. ERP는 회사의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해 돈을 얼마나 절약하는지가 포인트다. 비싸게 구축해 놓은 ERP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투자비용 이상의 saving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회사에 엄청난 손해다. 결국에 ERP의 활용도는 현업의 능력에 따라 달렸다. 그리고 현업의 능력은 그들의 의지도 의지지만, 얼마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존 ERP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중소/중견에 맞춰 개발을 했기 때문에, 시스템이 그렇게 크지 않다. 직접 사용해보지 않은 입장으로 최대한 수박 겉할기 식으로 밖에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확실한 건 SAP보다 사용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존은 따로 customizing을 할 수 없다.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장점이라면 더존 ERP에 대한 매뉴얼도 있을 것이며, 더존 본사에 전화해 물어볼 수도 있고, 회사 외부의 더존 엔드유저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AP는 상황이 다르다.

SAP 시스템은 방대하다, 이렇게 방대한 시스템을 매뉴얼도 하나 없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따로 매뉴얼도 없다. 아니 있어도 소용이 없다. 왜일까?

SAP 역시 pre-packaged software, 즉 BEST PRACTICES를 모아 사용자가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시스템,이지만, 회사마다 경영방침, 영업전략, 제품, 로케이션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 시스템을 자기 회사에 맞게 customizing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SAP를 쓰는 회사들이라도 서로의 시스템이 다 너무 다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매뉴얼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근데 이런 Customization을 SAP가 해주는 게 아니다. SAP에 맡길 수 있지만,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전문 컨설팅 업체에 맡긴다. 유명한 글로벌 업체로는 Big4(Pwc, KPMG, EY, Deloitte)이 있고, 그 밑에 3rd tier(웅진 IT, BSG, ASPN, ISTN 등)가 있다. 즉 SAP가 아니고,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와 개발자들만이 customized SAP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 되고, 온전히 그들의 능력에 따라 시스템의 usability가 결정된다는 말이 된다.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을 교육하는 것 또한 온전하게 그 컨설팅 업체의 능력에 달렸다.

결국 SAP와 클라이언트 사이에 컨설팅 업체가 껴 있어, 이 방대한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게 교육할 수 있는 매뉴얼도 없어(있어도 소용없어 다 커스터마이징 해버리니까), 결국은 SAP를 구축한 컨설턴트와 개발자들이 매뉴얼/교육을 시킨다는 건데 – 유능한 컨설팅펌을 쓰려면 또 다른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당연히 돈을 많이 쓰면 좋은 컨설팅 업체에게 부탁할 수 있으니 결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중견 사이즈의 기업에서 top tier 컨설팅 업체를 쓰기엔 무리가 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end-user가 쓰기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결국 돈”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처럼 SAP와 더존 또는 여러 다른 ERP를 고를 때 정답은 없다. 회사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여 그에 맞는 솔루션을 도입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Leave a comment

Design a site like this with WordPress.com
Get started